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てくる와 ていく를 단순한 보조동사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오다/가다가 뒤에 붙는 거 아닌가?" 하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慣れてきた라는 문장을 보다가 뭔가 이상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익숙해졌다'가 아니라, 그 익숙함이 바깥에서 나에게 걸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요. 그 순간부터 이 문법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어 문법이 단순한 시제 표현이 아니라, 사건과 화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기록하는 장치라는 관점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왜 てくる는 단순한 '오다'가 아닌가 — 벡터 이론의 출발점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복합동사(複合動詞)의 방향성이었습니다. 여기서 복합동사란 동사 뒤에 くる나 いく가 결합하여 변화의 방향과 지속성을 표현하는 문법 형식을 말합니다. 한국어에도 "들어오다", "나가다" 같은 표현이 있지만, 일본어의 てくる와 ていく는 물리적 이동보다는 화자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시간적 흐름을 담아낸다는 점이 좀 달랐습니다.
이 방향성을 언어학에서는 벡터(Vect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벡터란 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가진 물리량을 의미하는데, 언어 분석에서는 사건이나 감정이 화자를 향해 다가오는지, 아니면 화자에게서 멀어지는지를 구분하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てくる는 외부의 무언가가 화자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안으로의 벡터'이고, ていく는 화자의 현재에서 멀어지거나 확장되는 '밖으로의 벡터'인 셈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寒くなってきた(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와 寒くなっていく(점점 추워져 간다)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전자는 추위가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고, 후자는 추위가 시간 축 위에서 계속 진행 중이라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걸 처음 체감했을 때 꽤 신기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てくる와 ていく를 항상 심리적 침투나 소멸과 연결하는 관점도 있는데, 저는 그것이 항상 성립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 일상 회화에서는 단순히 변화의 진행이나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적 연구에 따르면 てくる와 ていく의 핵심 기능은 사건의 방향성과 지속성을 나타내는 상(Aspect) 표현에 있으며, 화자 중심의 심리적 해석은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출처: 국립국어연구원).
영화 속 미디어 린치를 문법으로 읽다 — 언어심리학적 분석

영화 <날조: 살인 교사라 불린 남자>에서 가장 서늘했던 부분은 대중이 하메시타 세이치를 '괴물'로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점입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프레임이 한 사람의 실존을 덮어씌우는 방식을 보면서, 저는 이걸 일본어 문법의 구조와 겹쳐 읽게 되었습니다.
"みんな それを 信じてきた(모두들 그것을 믿어 왔다)"라는 대사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てきた는 단순 과거형인 信じた(믿었다)와 다릅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 그릇된 믿음이 지속적으로 하메시타에게 쌓여 들어왔다는 시간적 축적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언어심리학(言語心理学)에서 주목하는 지점입니다. 언어심리학이란 언어가 인간의 인지, 감정, 행동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특정 문법 형식이 화자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쓰입니다.
반대로 하메시타가 진실을 외칠수록 그것이 아무 데도 닿지 않는 느낌은 ていく로 기록됩니다. 진실이 消えていく(사라져 간다)는 것은 단순히 진실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멀어져 소멸해 간다는 심리적 무력감을 담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정확한 포착입니다. 어떤 기억이 흐릿해질 때 忘れていく라고 말하면, 그 기억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감각이 분명하게 살아납니다.
이 분석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문법 설명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 작동하는 방식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낙인이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부정적인 표식을 붙이고 그것을 고착화하는 사회적 과정을 말합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정의한 낙인 개념에 따르면, 낙인이 한 번 고착되면 당사자의 반박이나 해명은 오히려 낙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미국사회학회(ASA)).
이 지점에서 てくる, ていく, そして ている라는 세 문법 형식의 방향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てくる: 외부의 압력·정보·시선이 화자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방향
- ていく: 화자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멀어지거나 시야 밖으로 소멸해 가는 방향
- ている: 침투도 소멸도 멈춘 고착 상태. 변화가 중단된 정적인 현재
영화 속 하메시타의 서사는 이 세 단계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대중의 악의가 침투해 들어오고(てくる), 그의 진실이 소멸해 가며(ていく), 끝내 '살인 교사'라는 상태로 박제됩니다(ている). 이 흐름을 문법으로 읽어낸 시각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어가 존재를 어떻게 고정하는가 — 실제 언어 사용에서의 적용
てくる와 ていく에 관한 언어학 연구는 꽤 축적되어 있습니다. 쓰쿠바대학(筑波大学) 리포지토리에 수록된 관련 논문들을 보면, 이 문법 형식이 단순한 이동 동사의 확장이 아니라 시간성(Temporality)과 방향성(Directionality)을 동시에 표현하는 복합적 장치임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성이란 사건이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나타내는 언어적 속성을 말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てくる를 단순히 '동작의 개시' 정도로 외웠는데, 실제 문장에서 맞닥뜨리면 그 감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히 感じてきた(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처럼 심리적 변화에 쓰일 때, 그 감각이 외부에서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참 묘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분석을 영화 해석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てくる와 ていく를 벡터로 해석하는 방식은 특정 서사와 맞물릴 때 매우 강력하지만, 이것이 일본어 문법 자체의 보편적 속성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적 독해에 가깝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는 언제나 그것이 놓인 맥락과 화자의 의도에 따라 달리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문법이 심리를 담는다"는 주장은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항상 의도적이거나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렌즈가 유용한 이유는 있습니다. 사회적 낙인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할 때, 그것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언어의 구체적인 방향성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생각보다 직관적입니다. 제 경험상 어떤 개념을 언어의 문법 구조와 연결해 이해하면, 그 개념이 훨씬 감각적으로 체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이 글이 말하려는 것은 문법 규칙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쏘아 올리는 말과 시선이 그 사람의 존재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상태로 고정시키는가. 그 질문을 てくる, ていく, ている라는 세 방향의 언어적 구조로 읽어내는 시도는, 적어도 저에게는 단순한 문법 공부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남겼습니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이 단순히 표현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김차장의 JS아카이브에서는 일본어 원리뿐만 아니라, 영화 속 깊은 이면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선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들을 참고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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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tsukuba.repo.nii.ac.jp/?page=1&size=20&sort=custom_sort&search_type=0&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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