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0년대 아날로그 향수와 넷플릭스, 그 기묘한 만남

"카오리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왔다. 21년 만에 보는 그녀의 이름.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지금, 나는 가장 연결되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마주했다." (사토의 독백 중)
2020년, 팬데믹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쿄의 거리는 기이할 정도로 적막합니다. 영화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46세의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가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우연히 첫사랑 카오리의 소식을 접하며 시작됩니다. 넷플릭스라는 가장 첨단화된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는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90년대의 삐삐, 펜팔, CD 워크맨, 그리고 오자와 켄지의 음악과 같은 아날로그적 오브제들을 소환하며 관객들을 거대한 향수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이 작품은 비선형적인 구조, 특히 현재의 무채색 삶에서 가장 빛나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구성'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드라마가 갈등의 해결을 향해 치닫는 '상승 곡선'을 그린다면, 이 영화는 과거로 갈수록 분위기가 밝아지고 희망차지는 일종의 '안티 드라마(anti-drama)'적 성격을 띱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현재의 초라함을 더욱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사토가 왜 지금과 같은 '시시한 어른'이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의 추락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잃어버린 빛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보통(普通)'이라는 낙인과 그 낙인을 거부했던 청춘들의 서사
"사토 군은 평범해서 좋네. 하지만 난 평범한 건 재미없어(普通なんて、つまんないよ。). 난 말이야, 외계인을 만나고 싶어. 아니면 내가 외계인이 되든가." — 카오리가 사토에게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날카로운 키워드는 '평범함(普通, 후츠)'입니다. 90년대 청춘의 한복판에 있던 사토와 카오리에게 평범함은 곧 개성의 죽음이자, 기성세대의 질서에 편입되는 굴욕적인 항복을 의미했습니다. "평범한 건 재미없다"는 카오리의 가치관은 사토의 세계관을 완전히 장악했고, 그는 그녀라는 '유일한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기꺼이 비범함을 동경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25년이 흐른 뒤, 사토가 마주한 현실은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평범함보다 더 초라한 '정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주인공이 '평범함'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엇갈리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토는 젊은 시절 카오리의 가치관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통해 겨우 '정상성(normalcy)'의 범주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과 따분한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감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에 끼어버렸습니다. 반면, 첫사랑 카오리는 시간이 흐르며 유연하게 변화했습니다. 그녀는 과거의 비범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사토에게 평범함은 '도달하지 못한 실패의 증거'인 반면, 카오리에게는 '삶의 자연스러운 성숙'으로 작용합니다. 사토가 여전히 과거의 가치관에 자신을 유폐시킨 채 성장이 멈춰버린 '어른 아이'로 남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 평범함이라는 단어에 대한 경직된 해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상실의 정서'와 일본어의 상황 중심적 수동태 사고방식
"우리는 헤어진 게 아니야.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만날 수 없게 된 것뿐이지.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상황'에 빼앗겨 버린 거야." (사토의 회상)
이 영화가 자아내는 특유의 '에모이(えもい,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감정)'한 정서는 일본어의 특징인 '상황 중심성'과 '수동적 자아'의 관점에서 분석할 때 더욱 명확해집니다. 일본 문화와 언어 구조는 주체적인 의지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場)'에 순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중시합니다. 사토의 삶은 이러한 수동태적 존재 양식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사토는 스스로 성인이 되기를 결정한 주체가 아니라, "원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린" 상황의 산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창의적인 꿈(소설 쓰기 등)을 능동적으로 실천하기보다, 타인의 평가나 주변 환경에 압도당해 머릿속에 갇혀 지냅니다. 카오리와의 이별조차 그는 상황을 매듭짓는 '종결(closure)'의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떠나가는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았기에, 그의 기억은 '성불'하지 못한 채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천을 떠도는 원혼처럼 그의 현재를 괴롭힙니다.
이러한 수동성은 영화의 시각적 연출에서도 드러납니다. 술집 창문에 비친 사토의 흐릿한 반영은 상황에 매몰되어 정체성이 희미해진 개인을 상징하며, 감옥처럼 묘사된 그의 사무실은 환경에 지배당하는 그의 내면을 투영합니다. 그는 상황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과거라는 거품 속에 자신을 유기한 채, 세상이 자신을 남겨두고 흘러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관조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의한 소외'는 관객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주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수동적 개인'들에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서글픈 위안을 건넵니다.
4. 파편화된 인간관계와 어른이 된다는 것의 비극

"세상 사람들의 80%는 쓰레기고, 나머지 20%는 찌꺼기야. 하지만 말이야, 그 쓰레기 같은 세상 속에서도 1% 정도는 정말 좋은 사람이 있거든. 나는 그 1%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걸지도 몰라."
사토의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상황 속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부유합니다. 나나세는 술집에 인생이 잡혀 사는 것 같은 괴로움을 토로하고, 세키구치는 현실적인 타협 끝에 이혼과 사업적 변화를 겪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 80%는 쓰레기고 20%는 찌꺼기"라는 자조적인 냉소를 공유하며, 그 안에서 1%의 '좋은 사람'을 갈구하는 파편화된 존재들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본질은 '일시적인 안전지대'의 공유입니다. 사토와 카오리가 머물던 우주 컨셉의 러브호텔은 외부 세계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단절된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을 나서는 순간, 그들은 다시 각자의 상황으로 흩어집니다. 1999년 12월 31일,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그들의 이별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저 '상황'이 그들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사토는 카오리가 남긴 "다음에 올 때 CD 가져올게"라는 지키지 못한 약속에 묶여, 2020년의 텅 빈 거리에서도 여전히 그 삼거리 2층 집 앞을 서성입니다. 이 정체된 시간이야말로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5.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한 거야. 설령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걸었던 시간만큼은 진짜니까." (카오리가 사토에게)
영화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성취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카오리가 사토에게 건넨 핵심적인 대사인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속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사토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달해서야 얻게 되는 깨달음은, 삶이 선형적인 성공의 계단이 아니라 수많은 고저가 반복되는 롤러코스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과거의 찌질하고 아픈 기억들을 억지로 잊으려 애쓰는 대신, 그것들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나를 완전히 지워내는 '성불'이 아니라, 차마 보내주지 못한 기억들조차 끌어안고 묵묵히 내일의 햇살을 맞이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평범함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가면서도, 가슴 속에 여전히 빛나던 순간의 파편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미성숙함'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가 아닐까요? 영화의 마지막, 어둠 속에 있는 사토에게 비출 햇살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상황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린 이 세상 모든 '수동적 어른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누구와 함께 걷고 있나요? 우리가 설령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했더라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김차장의 JS아카이브에서는 일본어 원리뿐만 아니라, 영화 속 깊은 이면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선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들을 참고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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